내 안의 분노
내 안의 분노
  • 서울동북뉴스
  • 승인 2012.05.26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정 숙<광진투데이 객원기자>

 
학교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수험생 아이가 학교 도서실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기준이 중간고사 성적 우선 순위로 결정된다는 학교의 방침을 이야기 했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 않은 내 아이의 입장에선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워 학교 교장선생님께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

동일한 교육비를 받고 교육을 하는 공교육 기관에서의 그러한 차별적 방침은 학생들에게 공정하지 않거니와 학생들이 주인인 학교의 시설물을 학생들의 자율적 기준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교우들간의 어울림과 부딪힘으로 꿈을 키워 나가는 곳이기에 학업 성적의 증진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 도서실은 공부 뿐만 아니라 하루의 공부를 끝내고 운동장을 걸어 나올 때 나의 꿈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희망을 가득 채워주는 장소였다.

물론 교사의 연봉책정 기준이 학업성취도와 방과 후 학습 참여도에서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는 신문기사를 수일 전에 접했던지라 학교는 학생들을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을 합격시킬수록 학교 측에서도 물리적으로 이롭다는 짐작은 하였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학교의 방침엔 동의할 수 없었다.

편지가 도착 되었다고 예상된 시기에 교장선생님과 전화 연결을 하여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익명의 편지를 보낸 것에 우선 사과하였다.

학교는 성적만을 우선시 한 것은 아니며 부득이 아이가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면 데려오라고 하였으나 교장 선생님은 이미 감정이 격하여 언론에 공개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접근하였다.
학생을 학교에 맡긴 학부모는 마치 막되먹은 아줌마가 되먹지 않은 떼를 쓰는 것인 양 학교의 방침이 옳다는 식으로, 그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를 개방하면 교사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통제하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순간 내가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철저히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은 공부 못하는 내 아이가 이러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섰다.

결국 성적 우선순위의 방침은 통화도중 확인 할수 있었다. 권위와 폐쇄적인 대화에 갖힌 통화음은 고요한 정적과 “내, 알겠습니다.”의 소리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학교의 방침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 일도 없으며 다만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학교 성적은 낮아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자신의 진로를 위해 사설 도서실을 전전하며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워 학부모의 소리를 낸 것 뿐이다. 이쪽에서 “끙!” 하니, 저 쪽에서 “꽥! ”하였다.
분노가 치밀어 수영복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격한 수영을 하며 내 안의 분노를 침잠하였다.
이 분노는 어디서 온 것인가? , 나는 왜 분노하는가?

에너지 끌개장으로 인간의식의 수준을 분석한 데이비드 호킨스 (David R.Hawkins) 박사는 그의 책≪의식혁명≫(Power vs Force. The Hidden Determinants of Human Behavior.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 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에서 “하나의 생활양식으로서의 분노(에너지 수준 150)는 ‘성질 더러운’격한 사람들을 통해 예시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것에 과민하며, 논쟁적이고 호전적인 혹은 소송하기 좋아하는 ‘불의(不義)수집가’가 된다. … 중략.

“분노한 사람은 욕망을 좌절당한 유아처럼 격하게 날뛸 수 있다.”고 썼다.

가히 ‘성질 더러운’나로서 무시 당함을 참지못한 분노는 격한 수영으로 분출되었다. 친구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사회적 기류에 꼼짝 못하며 순종하는 학부모가 대다수 인데 지렁이처럼 꿈틀거린 나의 모습이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로도 무언가 모를 씁쓸한 기분을 치유하진 못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또한 이 책에서 에너지 수준 250으로 '중립성'을 규정하였는데 휘어지지 않는 것은 부러지기 쉽다 … 중략.

중립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것은 내적 자신감의 시작이다. 자신의 힘을 느낄 때 사람은 쉽사리 겁먹지 않으며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삶에서 “펀치가 날아올 때 잠깐 뒤로 물러설 줄 안다면 삶은 기본적으로 괜찮은 거라는 기대, 이것이 바로 중림 수준의 태도다.” 라고 썼다.

내 아이가 학업 성적은 낮아도 ‘괜찮은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나는 ‘괜찮은 내 아이’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와 내적 자신감이 부족하였다. 또한 ‘나는 학부모요. 학부모란 말입니다.’의 태도는 내 안의 권위와 위력 (Force)을 증명하였다.

결국 Force(위력)와 Power(힘)를 구분짓는 임계점인 ‘용기(에너지 수준 200)’에도 접근하지 못한 나의 의식수준은 아직도 많은 끌개장을 생산해야 할 낮은 의식수준 저편에 있었다. 화창한 5월이다. 오늘은 유연한 물고기의 모습으로 수영을 해야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