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풍경] 비정규직
[에세이가 있는 풍경] 비정규직
  • 성광일보
  • 승인 2024.07.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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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관
시인, 수필가, (사)세계문인협회 이사
송인관
시인, 수필가

한국전쟁이 끝나 휴전이 된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네팔보다도 더 못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그 당시 농촌에서 날품을 팔며 가난하게 살던 많은 빈농들이 서울로 가면 잘 살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무조건 서울로 올라와 인적이 드문 산비탈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삶의 애환을 달래가며 어렵게 살았다. 

그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축 늘어진 몸으로 연탄을 새끼줄에 매달고, 쌀 봉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판잣집으로 불나방같이 찾아들었다.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새마을 운동이 번지자 우리 사회는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산업사회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내가 박스 테이프와 포장부자재를 취급하는 (주)동산포장에 근무할 때 구로공단에는 가발, 인형, 의류, 가방 등등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같이 들어섰다. 그 당시 우리 사회는 섬유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자 크고 작은 무역회사를 창업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늘어났다. 수도권에는 구로공단, 부평공단, 뚝섬산업단지 등등 많은 공단이 들어섰으며 수도권 변두리에도 영세 회사들이 줄을 이어가며 창업을 하였다. 

1970년대 초 내가 근무하던 (주)동산포장이 자금 사정이 악화되어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는 방산시장에다 (주)서통화학 박스테이프 판매 대리점인 〈동신종합상사〉를 창업하였다. 그리고 이곳 공단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거래처 확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당시 이곳 방산시장에는 많은 회사들의 판매 대리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본사에서 물건을 잔뜩 싣고 팔 톤 트럭이 도착하면 대기하고 있던 지게꾼들이 모여들어 얄팍한 품삯을 받고 짐을 내려주고 창고가 있는 곳까지 날라주곤 하였다. 그 일마저 얻을 수 없는 실업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지게를 지고 구루마를 끌고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이들은 이렇게 어렵게 돈을 벌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자녀들 교육을 시켜 우리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 당시 구로공단 산업현장에서는 밤새 미싱을 돌리고 쥐꼬리만 한 적은 임금을 받아 누런 밥알을 씹으면서 고향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부모님 생활비와 동생들 학자금으로 보태 쓰라고 송금을 하는 비정규직 여공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산업현장에서 뼈저리게 일하는 임시직 여공들을 '공순'이라고 부르고 남자공원들을 '공돌'이라고 부르던 애달팠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이들이 살아 있다면 팔구십 줄에 들어서 있을 것이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무조건 서울로 올라왔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그들은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알고 밤을 새워가며 미싱을 돌리고 돌리면서 삶의 애환을 달랬다.

임시직 직원들은 일을 뼈저리게 하면서도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누구를 원망할 줄도 모르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비정규직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애를 누가 알아줄까. 지방자치제와 국가는 좋은 정책을 발굴하여 비정규직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속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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