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
  • 김해양 기자
  • 승인 2024.07.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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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광일보(성동신문·광진투데이)문화기획단 백두산 탐방
김해양 기자

지난 3월 편집위원모임에서 성광문화기획단(성동신문, 광진투데이)을 이끌고 해외 역사 탐방을 한 번 하자라는 안건이 나왔다. 그 첫 번째 답사지로 백두산 천지를 가자라는 의견에 모두가 만장일치로 순식간에 정해졌다. 그래서 발 빠르게 11명의 문화기획단원을 모집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백두산의 푸른 정기를 받기 위한 백두산 기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때 백두산 화산폭발 100년 주기설로 인해 1925년에 분화한 후, 100년 후인 2025년에 폭발한다는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활화산이다 보니 한 번씩 거론되곤 하는데 아직 전조증상이 없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폭발한다고 연구가들은 예측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영산으로 배달민족의 사명처럼 폭발하기 전에 가봐야 할 백두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백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출발은 그러한 이유가 컸다.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는 코스는 몇 가지가 있다.백두산을 중심으로 남쪽에서 북한을 통해서 올라가는 길(남파)이 있고, 서쪽을 통해 압록강 방면에서 올라가는 길(서파)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서는 길림성에서 오르기 때문에 송화강의 발원지인 장백폭포를 볼 수 있다. 이를 북파라 한다. 만약 동쪽의 길(동파)이 일상화되면 이는 두만강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는 비탈길, 언덕길을 의미한다.
그 중 우리는 첫날은 봉고차를 타고 북파로, 둘째 날은 낮고 완만한 경사의 1442계단으로 해서 가는 서파로, 이렇게 두 번의 코스로 두 차례 가기로 했다. 백두산은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천지를 볼 수 있는 맑은 날이 그리 많지 않고 정말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들었다.

백두산으로 출발하기 전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 정부는 천지나 고구려 유적지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사진 찍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에 출발전에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백두산으로 출발하기 전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 정부는 천지나 고구려 유적지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사진 찍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에 출발전에 호텔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니까!  천지를 꼭 보리라는 믿음으로 의지와 투지를 불태우면서 중국 통화(通化)시에 밤늦게 도착한 11명의 문화기획단은 식사와 반주를 즐기며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아뿔싸, 다음 날 아침부터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가이드가 백번을 와야 두 번을 본다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 말이 자꾸 생각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행여나 못 볼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미리 방어벽을 친 게지.
그렇지만 굳게 믿어본다. 우리 문화기획단원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 운발로 분명 볼 수 있을거라고!

북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북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불리는 백두산은 한반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산머리가 1년 중 8개월이 눈으로 덮여 있고, 흰색의 부석들이 얹혀져 있어서 흰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인지 버스를 타고 가는 구간 구간 비가 왔다 안왔다를 반복하면서 심장을 쫀득쫀득하게 조이게 했다.

'백두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실천하듯 일단 진달래 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실은 우리보다 더 속이 탄 사람은 가이드다. 어떻게 해서든 천지를 보여 주겠다는 일념으로 기적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날씨 정보와 백두산 실시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천지가 열리는 틈을 타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감사했다.

식사 후 약 30분 정도 덜컹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북파의 정상 천문봉으로 향하면서 산의 경사면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기사는 단 한 번의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날아가듯 내달린다. 살짝 불안한 마음에 허술한 안전벨트와 손잡이에 의지해 본다.

북파 올라가는 길
북파 올라가는 길의 풍경

수십 대의 봉고차들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미니밴들의 행렬도 하나의 풍광이 되는 곳이다.
올라가는 내내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맥의 풍경에 가슴이 뻥 뚫렸고, 그 와중에 구름이 멀리서 다가왔다가 또 멀어졌다가 하면서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다. 간간이 보이는 야생화들과 눈도 맞추고 관심을 주고 싶었지만 천지를 정말 볼 수 있을까? 못 보면 어떻하지?하는 걱정과 설렘으로 가득 차 그냥 지나쳐버린 야생화들에게 이제와서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든다.
거의 도착할 때쯤 가이드는 천지가 열리고 있으니 볼 수 있겠다라는 확답을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차에서 내려서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내내 가슴이 왜 그렇게 뛰던지!천지가 뭐라고?!드디어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천지를 볼 수 있구나.
너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지? 사실 나는 준비하지 못했다. 그저 설레고 두근거릴 뿐.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천지가 열렸다. 마치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고 있는 모습에 
순간 함성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이 오묘한 기분은 뭘까? 우리 땅, 우리 길을 두고 참 많이도 둘러 왔구나. 그래서 더 씁쓸했다.
망망대해 같고 푸르다 못해 검푸른 천지를 바라보노라니 벅찬 감동의 물결이 밀려와 담담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갑자기 애국자가 된 기분이다.
감동도 잠시 벌떼 같은 사람들로 서로들 천지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아우성들이다.

나도 이 순간을 눈으로만 담아서는 다 기억을 못할 것 같아 셀카봉을 길게 빼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가이드가 새치기를 해도 용서가 된다고 눈치 보지 말고 비집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란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간신히 자리를 차지해서 한참을 천지를 바라보고 찍고 또 찍고, 우리 단원들과도 함께 찍고 또 찍고, 힘들게 차지한 자리를 오랫동안 사수하기 위해 그렇게 욕심을 내어 보았다.

그래도 뭔가 자꾸 부족하고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것이 언제 또 이 광경을 다시 볼까?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카메라를 눌러댔다. 천지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듯이 카메라를 아무리 눌러대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머리도 날리고, 모자도 날려 정신이 없어 한참을 넋이 빠진 듯 황홀(恍惚)함과 홀황(惚恍)함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천지를 드디어 직접 눈으로 보는 이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 11명의 문화기획단원 모두가 천지를 보는 것은 이번 생애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번 만에 천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대운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도 천지 도전 여섯 번 만에 성공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운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운이 없으면 백두천지를 보는 대신 안개천지를 본다고 가이드가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다행히 백두천지를 본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콧노래 흥얼거리며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달리다시피 내려왔다. 우리 문화기획단원들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웃음꽃이 활짝 폈다. 또렷한 천지를 봤으니 내일은 안개천지를 봐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며, 못 보고 내려온 사람들에게 으스대며 자랑질도 했다. 내일은 서파에서 천지를 편하게 대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행여나 못 봐도 아쉬움이 없으리라. 

이렇게 기분 좋은 날 그냥 지나갈 수 없지. 그래서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김일성이 생전에 장수 불로주라며 즐겨 마셨다는 들쭉술로 축하주를 나눴다.
들쭉술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이 건배했던 술로도 유명하다. 

이 날은 모두들 흥분된 마음을 쉬 가라 앉히기 힘든 밤이었다. 업된 분위기 속에서 기분좋게 축하파티를 마무리하면서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이 날을 각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북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서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서파에서 본 백두산 천지”

화장실 갈 적 다르고 올 적 다르다고 하더니 어제까지는 북파에서 본 천지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했는데 아침에 막상 눈을 떠보니 서파에서 보는 천지는 또 어떤 모습일까 하는 마음에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어쨌거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서파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비가 와서 안개천지를 보겠구나 싶었다. 또 무릎 연골이 좋지 않은 단원도 있어 저 많은 계단을 어떻게 다 오를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수시로 몇 계단까지 왔는지 5, 10, 15, 100, 200, 300.....이렇게 새겨진 숫자를 확인해가며 천천히 올랐다. 간간이 뒤돌아 보며 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에 한 번 감탄했다가, 숨이 차면 또 앉아서 쉬었다가, 전날 차로 가느라 지나친 야생화들에게 “자세히 보니 예쁘다."라고 말도 걸어주고 사진도 찍어 주며 북파로 갈 때와는 다르게 여유를 부리며 오를 수가 있었다.
한계단 한계단 걷다 보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과 안개, 바람도 느낄 수 있었고, 가마꾼들의 노고도 한눈에 보게 되었다. 

가마

참고로 가마꾼은 2인 일조로 우리 돈 8만원으로 정상까지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사실 그닥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무릎이 성치 않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사람이 직접 끄는 가마를 타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주목을 받아야 하고 가마꾼들의 빠른 걸음으로 인해 울렁울렁 안락감도 별로 일 듯하다. 그래도 천지를 보겠다는 의지 하나는 가마를 탄 사람이나 안 탄 사람이나 같은 마음이다. 어쨌거나 가마꾼의 일상도 여기서는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가마! 가마!”하며 소리치며 지나가는 가마꾼들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렇듯 북파와는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어 1442개의 계단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느덧 1442번째 마지막 계단까지 올랐다. 그때 마치 우리를 맞이하기 위함처럼 안개가 걷히면서 서서히 연못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설마 두 번씩이나 보는 행운이 우리에게 왔다고? 이곳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호수, 백두산 천지로구나!  또 한 번의 기적이 연출된 것이다.
정말 천지가 조화를 부려 멀리서 온 후손을 반가이 맞이 하듯이 하늘 문이 열리는 듯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장군봉을 위시해 16개 봉우리가 감싸고 하늘빛과 물빛이 하나로 연결되어 너무나 푸르게 빛나면서 마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같았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이 광경이 믿기지 않아 연신 놀라면서도 이 순간을 놓칠세라 어느새 카메라를 들이대며 빛의 속도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북파에서 본 천지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야성미가 느껴지는 남성적이라면, 서파에서 본 천지는 드넓고 부드러운 곡선이 주변의 삐죽한 바위마저도 다 감싸며 포근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여성적이라고나 할까? 나만의 느낌이 그렇다.

서파로 올라가는 길에 야생화
서파로 올라가는 길에 야생화

한 연못에서 남성미와 여성미가 다 느껴지는 그런 오묘한 천지였다. 
안개가 은은하게 깔렸다가 또 갑자기 파란 연못이 보였다가 짧은 시간 내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니 현실 세계를 벗어난 듯 잠시 어리벙벙(惚恍)한 느낌까지 들었다. 깊고 풍부한 물을 머금고 있는 호수, 이미 호수에 내 마음이 다 빠져버린 듯하다.

「그리던/그리도 그리워하던/백두(白頭)에의 길/오! 설레는 가슴//산정에 덮인 검은 구름/천둥에 소나기 짙은 안개와 여름 우박 시간은/조여 오고/빛은 멀기만 하다/오, 불가능할 듯한 천지와의 만남」
시인 청민 박철언선생이 1989년에 백두산에서 쓴 '오, 백두여'라는 시다.

백두산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백두산으로 가는 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시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천지를 보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보기 힘들다는 신비의 거대한 거울, 천지를 두 번씩이나 봤으니 도대체 우리 단원들은 무슨 복을 타고 난 것일까?

그 불가능할 듯한 천지와의 만남을 두 번씩이나 이뤄낸 우리 문화기획단원들은 행운아들임에 틀림없다. 그런 것이 확실한게 천지에 넋을 잃고 한참을 보고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서야 거짓말처럼 천둥 번개가 치더니 우박이 솓아지고 굵은 빗줄기가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드라마틱하지 않는가?! 아직도 천지를 못 본 사람들이 천지라는데 천지를 두 번씩이나 본 우리로서는 평생 느끼지 못한 그런 벅찬 감동을 가슴에 품고, 대피소휴게소에서 점심 메뉴인 비빔밥을 먹으며 꿀맛을 느꼈다. 배가 고파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무튼 세상 맛있는 비빔밥이었다.

“백두산 품속의 장백폭포와 금강대협곡”

장백폭포
금강대협곡<br>
금강대협곡

 

 

 

 

 

 

 

 

 

 

 

 

 

 

천지에 흠뻑 매료돼서 그 감동만 천지빼까리 전했는데 백두산엔 천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파로 천지를 만나고 올 때는 장백폭포, 서파로 천지를 만나고 올 때는 금강대협곡을 함께 찾았다. 화산이 만든 지형은 언제나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하며 황홀한 순간들이다. 그들 또한 천지 못지않게 그랬다.

장백폭포는 천지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곳이란다. 천지가 머금은 물은 '달문'을 통해 빠져나와 송화강의 시작이 되고, 달문을 지난 물줄기는 용암이 빚어낸 협곡으로 쏟아지는데 이것이 장백폭포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비룡폭포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거무스름한 V자 협곡 사이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힘찬 물줄기의 기세가 대단하다.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일년내내 얼지 않는 유명한 폭포답게 멀리서 봐도 그 물줄기의 위용과 장엄함이 느껴진다. 저 순백의 물줄기가 송화강이 된다고 한다.

또 폭포수 주변에 온천지대와 만나 신선계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그 온천수로 삶은 장백산 달걀의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린다는 서파의 금강대협곡은 용암이 흐르며 생겨난 지형이다. 화산폭발 당시 용암이 흐르며 깊게 팬 땅에 흙이 쌓이거나 바람에 깎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것은 낙타를 닮았고, 어떤 것은 손바닥을 닮은 기암괴석들이 많다. 

천지를 보고 나서부터는 줄곧 강한 빗줄기가 끊이질 않았지만 침엽수림 사이로 이어지는 비밀스런 협곡의 자태는 역시 빛을 잃지 않았다. 비가 오니 말그대로 수채화가 따로 없네.
용암으로 인해 생겨난 V자 계곡과 신기한 모양의 바위들을 감상만으로 끝내기에 너무 아쉬워 우비를 입고도 옷을 다 젖어가며 카메라에 아니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꼿꼿한 기암절벽의 자태를 꼼꼼히 퍼담아왔다. 빗속임에도 그 계곡의 웅장함과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다.

백두산 품속에 있는 웅장하고 장엄한 물줄기, 장백폭포와 원시림 그대로의 모습 금강협곡을 이렇게 내 품에도 담아 봤다.

“감출 수 없는 감동, 백두산기행”

천지의 여운은 길게 오래갈 것 같다.
천지는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고, 내려서 또 타고, 걷기를 반복하며 기나긴 장거리 이동 거리를 보상해주기에 충분한 아니 과분한 풍경이었다.
우리의 땅, 백두산을 가기 위해 남의 땅을 거쳐 '장백산'을 올라야 하는 이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픈 역사 현장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장백산이라 불리는 백두산에서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지 아니한가?!
이번 여행은 다른 여행과는 다르게 순간순간 뭉클하고 울컥한 시간들이 많았다.

지척에서 북한 땅을 바라봤을 때 에이는 가슴이 그랬고, 다른 나라 땅에서 우리의 강산을 바라보는 그 울분도 그랬고, 빼앗긴 땅에서 우리의 영웅 광개토대왕릉을 마주하면서도 그랬고,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울분에 북받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교포3세 가이드의 거렁거리는 눈망울을 보면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백두산 천지 문화답사를 가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여행은 늘 옳다.

우리 11명의 문화기획단원 모두가 이번 생애 처음 백두산을 오르면서 천지를 두 번씩이나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감동과 뭉클한 감격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일 것이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를 받아왔으니 그 기운으로 남은 하반기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도록 파이팅을 해본다!

사진은 단둥으로 가는 중 시골길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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