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당로를 걷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券書 行萬里路) - 만권의 책과 만리의 길이 교차하는 곳"
"독서당로를 걷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券書 行萬里路) - 만권의 책과 만리의 길이 교차하는 곳"
  • 성광일보
  • 승인 2024.07.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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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4인4색, (思索+4color)>발밤발밤 성동스케치
(발밤발밤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을 뜻하는 우리말)

서울의 행정구역 중 역사적 배경과 유래를 반영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 여럿이다. 성동구 응봉로에서 금옥초등학교를 거쳐 용산구 한남동에 이르는 '독서당길' 또한 그러하다. '독서당(讀書堂)'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철학과 인문학,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충분히 느껴지듯 이곳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문화의 서사는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번 스케치에서는 '독서당로(讀書堂路)'에 담겨진 옛날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공간적 의미를 찾아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향기로운 성동의 공간 산책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독서당터 (옥수 극동아파트 입구)
<독서당계회도> 연못과 개울부분(이미지 출처: 미디어붓다)

◆독서당의 배움과 쉼, 현대에 이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총명한 젊은 문신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충분한 여가를 주고 좋은 글을 읽혀 훗날 크게 쓸 인재로 키우기 위한 연구시설로 독서당(讀書堂)을 운영하였다. 이후 1515년(중종 10년)에 이르러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자리인 동호 월송암 서쪽 기슭 두무포(豆毛浦) 정자를 고쳐 독서당을 신축하였는데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하였고 이후 임진왜란(1592년)까지 학문연구와 도서열람 기능을 수행하며 300여명의 문사를 배출하였다 한다. 특히 조선의 교육과 정치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퇴계이황, 율곡이이, 서애유성룡과 같은 대학자들이 학문을 닦고 사상을 공유함은 물론 문화적 창작활동에 기여한 공간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여 '동호독서당'이 위치했던 옥수동에서 약수동을 넘어가는 고개를 현재 '독서당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과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을 겪으며 독서당의 기능이 위축되었고, 정조 때 규장각이 건립되면서 그 기능이 거의 소멸되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 독서당의 의미와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평생교육과 전인교육의 교육공간으로 재복원해야 한다는 청원이 강력하게 이어졌다. 이에 독서당이 가진 배움과 휴식이라는 역사적 소명에 대한 재현을 위하여 지역사회는 지속적으로 노력하였고 그 결과 독서당로 확장(1985), 독서당터 표지석 단장(2009), 독서당로 역사·문화거리 조성, 독서당공원에서 대현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조성, 성동청소년문화의집 건립(2012) 등을 이루어냈다. 이와 같은 소통의 문화, 여유를 통한 배움의 공간은 독서당 정신의 재현인 것이다.

◆성동구 책마루 - "독만권서, 행만리로" 독서당의 정신을 잇다

성동청소년 문화의집 외부전경
(출처: 성동청소년 문화의집 홈페이지)
독서당이 있던 주변 응봉산에서 내려다본 전경

독서당로를 따라 독서당공원에 이르러 한강을 내려다보며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애민(愛民)을 위한 사색과 명상에 잠겼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을 떠올려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성동의 시간여행은 독서당로에서 시작할 수 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券書 行萬里路)'는 '수많은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독서와 경험을 통하여 넓은 시야와 깊은 지식을 갖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웰빙(well-being)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독서와 경험, 배움과 쉼의 어우러짐이 독서당 정신이며 이를 계승한 장소가 바로 성동구의 '책마루'라 할 수 있다. 

성동구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문화와 교육,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성동책마루', '성수책마루', '독서당 책마루'로 발걸음을 하나씩 옮겨본다.

성동구민의 '내 인생의 책'을 기증받아 채워진 무지개 아카이브

◆첫 발걸음, 성동책마루: 머무는 곳으로서의 아름다운(美) 공간

행정구청은 일반적으로 '처리'를 위한 곳으로 인식된다. 민원 및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고 해결하며 각종 신고 및 허가를 득하기 위하여 방문하는 의례적 공간일 뿐이다. 모두 무언가를 처리하기 위하여 바쁘게 걷고 필요한 소통만 하는 사무적이며 스쳐가는 공간이 바로 행정구청인 것이다. 하지만 성동구청 1층에 들어서면 스치지 않고 머무르게 된다. 그곳에는 '성동책마루'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깔의 은은한 조명 아래 독서를 하거나 소통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성동구청에서는 청사가 구청 직원의 단순한 업무공간이 아닌 주민과의 '공유와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세우고 2018년 청사 내 공간기획을 시작하였으며 1층 로비에 성동책마루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책(冊)'이라는 한자어와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마루'를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인 '성동책마루'라는 이름 또한 구청 직원들의 투표 참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마루'는 본래 건물 안에 지면보다 높게 목재를 평평하게 깔아서 만든 공간으로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 출입을 연결하는 곳으로서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에 독서와 문화로 소통하며 휴식을 제공하는 '책마루'라는 이름은 이곳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성동책마루' 입구에 들어서면 13.5m의 높은 천장고를 가진 '무지개 아카이브'가 먼저 눈길을 끈다. 커튼월을 따라 둘러싸인 책장은 실제로 책을 꺼내서 읽는 목적보다 '책마루' 공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볼 수 있다. 성동구민들이 기증하는 책으로 채워지고 있는 아카이브는 쌓여가는 책장의 레이어, 그리고 둥글게 둘러진 책장의 형상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간과 사람의 지속적 연결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면으로 들어서면 무지개 색깔의 층구조인 '계단마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계단 위 어디든 자리를 잡고 앉으면 성동구청 1층 로비가 한눈에 들어오며 개방된 공간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무심하게 앉아 공간을 느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온돌방석이 머물 수 있는 온기를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고 소규모 강연, 독서토론, 문화행사 등의 다양한 경험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오감을 자극하는 곳이기도 하다. 책에 적힌 글을 읽다 보면 불현듯 커피 내리는 소리와 향긋한 향기가 함께 전해진다. 2~3천원대 가격의 음료와 케이크는 독서의 시간을 더욱 달큼한 여유로움으로 이끌 것이다.

카페 위쪽 기존 건물의 벽을 따라 위치한 'ㄷ'자로 연결된 '북웨이'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다. 탁 트인 다른 공간에 비하여 이곳은 아이들의 감성과 습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곳으로 층고를 낮추고 다락방과 같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로비의 높은 층고를 중층으로 분절하여 어린이들이 공간을 오가며 그들만의 공간적 경험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한 건축가의 배려와 깊은 의도가 엿보인다. 

주중, 주말 구분 없이 밤 9시까지 개방하고 있는 '성동책마루'는 설립 이래 그 인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다른 상업공간과 달리 유아를 동반한 가족, 어르신 등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으며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스치는 곳이 아닌 머무르는 곳, 배움과 쉼의 공간인 성동책마루는 주민의 사랑을 받는 독서당로 정신이 깃든 선(善)한 공간이다.

음악이 흐르는 성동책마루, 2024정오의 공연 포스터

◆둘째 발걸음, 성수책마루: 비우고 채우는 편안한(安) 공간

2022년 제16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공건축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건축물은 다름 아닌 성동구의 '성수책마루'이다. 품격 높은 공공건축물 보급으로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에 수여하는 상으로서 2018년 '성동책마루' 수상에 이어 성동구의 2번째 쾌거였다. 

뚝섬역 6번 출구에서 뚝섬로1길을 따라 150미터 남짓 남쪽으로 걷다보면 성수문화복지회관을 만나게 된다. 이곳 2층에 열린도서관 개념의 다목적 문화복합공간인 '성수책마루'가 자리하고 있다. '성동책마루'가 1,000명 이상의 성동구청 근무자와 불특정 다수의 민원인이 방문하는 공간에 마련된 공공서가인 반면 '성수책마루'는 방문자의 밀도가 시간대에 따라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는 공연예술의 공간인 아트홀 로비에 위치했다는 차이를 가진다. 이와 같은 '성수책마루'만의 입지적 특수성과 동일 건물 내, 다른 6개 공공기관의 건립목적이 어우러져 윈-윈의 융합적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기획되었다. 

'성수책마루'는 성수문화복지회관 1층 로비 또는 외부의 계단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성동책마루'의 성공적 공간구성 요소인 클라우드 서가, 스탠드형 계단, 포켓 공간 등은 '성수책마루'에도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편안함과 친근한 분위기를 구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책마루의 복층 공간에는 어린이 책이 비치되어 있고 작은 카페도 이용할 수 있으며 2층 성수아트홀 공연을 기다리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이번 여름 어느 날, 쉼으로 비우고 독서로 채우는 '성수책마루'의 발걸음을 제안해본다.

◆셋째 발걸음, 독서당책마루: 둘러보며 여유를 느끼는 선(善)한 공간

융복합 혁신교육특구 지정과 유네스코 선정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독서당인문아카데미센터 1층에는 독서, 만남, 휴식, 공연, 강연 등이 가능한 소통 공간으로서의 '독서당책마루'가 위치하고 있다. 응봉산 옆 금호로 끝자락에 자리잡은 독서당 인문아카데이센터에서는 성동구민의 자아실현과 삶의 질 향상 지원을 통하여 다양한 평생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인문-생활-어학 특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센터 1층에 자리한 '독서당책마루'는 금호, 옥수 지역 가족 단위 이용객들의 휴식, 독서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벽과 천장의 흰색 바탕 위에 색색의 네모 형태의 조명이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뒤로 펼쳐지는 계단마당에는 도서기증으로 모아진 총 7,500여권의 책이 가득하다. 사실 다른 책마루에 비하여 공간 자체는 작지만 시원한 개방감을 갖고 있어 답답함은 느껴지지 않으며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와 창밖 풍경을 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독서당책마루'는 영유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평일(09:00~21:00)과 주말주일(09:00~18:00)에 이용 가능하며 공휴일에만 휴관한다. 
자, 홀로 또는 함께! 
응봉산, 한강, 금남시장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독서당책마루'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성수아트홀, 성수도서관 등이 들어선 '성수문화복지회관' 건물 외관
'성수책마루'전경

◆성동 독서당로에서 풍류(風流)를 느끼다

‘독서당책마루' 계단마루

조선 시대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풍류'(風流)라는 개념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깊은 학문적 성찰과 문화적 취미의 결합을 의미했다. '풍류'는 자연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더불어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균형 잡힌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존중받았고 인간의 정신을 수양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의 '풍류'는 무엇일까? 사실 바쁜 일상에서 사색과 명상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조상들의 삶에 녹아 있던 '풍류'를 현대사회의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정체성 확립을 위한 독서와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 그리고 문화적 체험이 필요하다. 

책과 대화하고 소통을 통하여 만남을 이루며 문화적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현대적 풍류, 성동구 독서당로의 발걸음 속에서 그 공간을 만나보았다.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곳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와 학문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살아 있는 교육과 문화의 장으로서의 독서당로를 걷는 이들 모두는 책 속 세계를 넘어, 실제 경험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 여유의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시민들의 걸음 가까이 문화를 향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책마루를 비롯한 문화공간들을 지역 곳곳 더 많은 곳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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